'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라는 드라마는 혹하는 제목에 시청했다가 사건 사고가 계속되다 보니, 뭔가 불쾌하고 이건 뭔가 하는 드라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만 볼까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실제로 시청률이 떨어진 걸 봐도, 다른 시청자들도 나 같은 마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이 드라마가 뭘 말하려는 건지, 드라마를 좀 이해해 보고 싶어서 드라마 장르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장르가 '피카레스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 '피카레스크'가 무엇이고, 이 드라마가 왜 피카레스크 장르인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드라마의 장르를 알고 보니, 드라마를 보면서 느꼈던 답답함이 덜해졌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드라마의 주된 장르인 '피카레스크'와 함께 보이는 블랙코미디적 요소에 대해서 정리해 보겠습니다. 알고 보면, 드라마가 더 잘 이해될 것 같습니다.

블랙코미디적 요소
1. 상황의 아이러니
가장 큰 블랙 코미디 요소는 건물주가 되었는데, 인생은 더 비참해졌다는 설정 그 자체입니다.
- 보통 '건물주'라고 하면 여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기수종은 대출 이자를 갚으려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 건물을 지키기 위해 민활성의 납치범죄에 공범이 되어버립니다.
- 가족의 희망인 건물이 정작 범죄의 현장이자 감금장소가 되고, 건물 때문에 빚, 경찰, 악랄한 거대자본세력, 건물 세입자에게 사방으로 조여드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습니다.
2. 웃픈 대비
비극과 일상이 아주 이상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 화장실 수리와 30억 : 리얼캐피털에 빚을 갚고 남은 20억이라는 거액의 범죄 자금을 숨겨둔 곳이 하필 막힌 화장실이라는 점입니다. 가장 지저분하고 일상적인 공간인 화장실과 탐욕의 상징이 충돌하면서, 똥물을 뒤집어쓸 각오로 돈을 지키려는 인간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지는 부분입니다.
- 가정적인 범죄자 : 기수종은 납치 공범이지만, 딸의 미국 대학 입시를 걱정하는 아빠이기도 합니다. 범죄를 저지르는 와중에도 학부모로서의 고민을 하는 그 괴리감이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3. 소통과 불통의 오해
기수종과 민활성이 처한 상황들이 마치 '코미디 극'처럼 꼬여 있습니다.
- 민활성은 장모님이 경찰에 신고해서, 기수종이 약속 장소에 오면 안 된다고 알리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기수종은 핸드폰이 망가져서 아무것도 모른 채 약속 장소로 옵니다.
- 시청자는 다 알고 있는데, 당사자들만 몰라서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과정은 고전적인 희극의 기법이기도 합니다.
4. 인과응보의 뒤틀림
장모 전양자의 죽음 장면은 잠깐 나오지만, 가장 황당한 장면입니다.
- 기수종이 순순히 전양자에게 건물을 팔지 않자, 그날 밤 전양자는 계략을 세우고 기수종의 건물에 잠입합니다. 먼저, 전양자는 건물을 망가뜨리기 위해, 건물 옥상의 물탱크에서 물이 넘치게 합니다. 그다음 장면이 궁금하던 찰나 전양자는 건물지하에 갔다가 오동기가 기수종인 줄 알고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죽습니다.
- 남의 재산을 망치려던 사람이 주인을 징벌하려던 세입자에게 죽음을 당하는 황당한 엇박자가 블랙 코미디 특유의 싸늘한 유머를 만듭니다.
5. 가해자와 피해자의 뒤엉킴
- 전양자 : 남의 건물을 망가뜨리려고 잠입한 가해자였는데, 한순간에 오동기에게 맞아 죽는 피해자가 됩니다.
- 오동기 : 자꾸 막히는 화장실을 고쳐보겠다고 화장실에 갔다가 기수종이 숨겨 놓은 돈을 발견하고, 돈에 대한 욕심이 생겨버립니다. 기수종에게 들켜서, 결국 건물 지하에 갇히게 됩니다. 지하 창고 문이 열리자 자신을 감금한 기수종이 온 줄 알고, 몽둥이를 휘둘렀다가 사람을 죽이는 가해자가 되어버립니다.
누가 나쁘고 누가 불쌍한지를 따질 겨를도 없이 사건이 터져버렸습니다. 이 엉망진창이 상황이 블랙 코미디의 아주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라는 제목만 보고, 진짜로 건물주가 되는 방법이라든가 건물주에 관한 그런 에피소드 정도로 시청했던 드라마에 답답함을 느끼던 중 이 드라마의 장르를 따지고 보니 답답함을 줄어들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 생깁니다. 재밌게 보려고 했는데, 어이가 없고 뭐 이런 드라마가 다 있어했던 내용들에 작가가 보통 사람이 아니군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앞으로 드라마에 등장하는 이 엉망진창 악인들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끝까지 한 번 봐 봐야겠습니다.